Ⅰ. 서론
1. 문제제기
한국교회가 걸어온 백년사의 뒤안길은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였다. 1907년 말씀 중심인 평양 대부흥 운동을 시발점으로 지금까지 교회는 거룩한 성도로서의 변화를 추구하며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삶의 변화의 과정은 절대적인 신학적 토대 속에서 말씀으로 교회와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은 에큐메니칼의 시대이다. 한 교파가 자기것만을 고집해서는 현대의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 이것은 구원론에도 적용된다. 물론 구원론의 각론에만 집중하다보면, 분열은 계속 되겠지만, 구원론의 총론에 집중하면은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으로 보여질 수 있다
독일 태생의 역사가 필립 샤프( Philip Schaff)는 19세기 중반 미국의 종교를 평가하면서, 장로교가 “의심의 여지없이 , 가장 수가 많고, 존경할 만하며, 가치 있고 , 지적이며, 영향력이 있는 교단 중의 하나이며, 특별히 견실한 중산층에 강력한 거점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내 여타 개신교 교
1. 복음주의의 개념
복음주의는 루터가 1520년과 1522년에 “Evangelicals”를 사용하였고 몇 년 뒤에는 에라스무스가 사용하였다. 1531년에는 토마스 모아 경이 종교개혁의 지지자들을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언급했다. 이 용어는 종교개혁의 연장선상에서 “복음에 속한 사람들”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제1장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
1. 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죽산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은 구 프린스턴 신학전통의 마지막 주자인 메이천 박사의 신학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신학적 배경은 일제 하 식민지통치에서 한 민족의 교육과 개화에 힘썼던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
제 1장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
1. 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1.1 박형룡 박사의 신학적 배경
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톤 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된 것이며 당시 선교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의 신학
본 소고(小考)에서는 중미 고대 문명 이해와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선교의 평가, 그리고 독립 이후의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등장한 해방신학과 복음주의의 갈등, 또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오순절 운동까지 봄으로 중미 선교 역사를 고찰하여, 앞으로의 중미 선교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신학교육을 받고, 1508년 당시 신설한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일반교양과목을 가르쳤고, 1512년 신학박사가 된 뒤 성서학을 가르쳤다. 그 동안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어 자신의 죄에 절망하나, 신앙에 의해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신의 뜻>을 발견한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인식이라고하는 새로운
복음주의적 부흥ꡓ의 결과였으며, 이 복된 흐름이 넘쳐흘러 모든 영어 사용권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존과 찰스 웨슬리 형제의 감리교, 휘트필드의 칼빈주의적 감리교, 영국 국교회 복음주의 교회로 인해 비로소 복음주의 부흥 운동이 거대한 물줄기로 등장했다. 1729년 옥스퍼드에서 웨슬리 형제
모더니즘에 대한 약간의 반발의 뜻으로 사용된 용어이다. 이문균,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23.
그러나 이 용어는 수십 년 후에 일반화가 되었고, 1960년대에 들어 와서야 현대를 지배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